사건연루 의혹 업체에 전 경찰서장 재직...주민은 경찰수사 제대로 될까 의구심

▲ 오산시 원동 한 창고 앞에 빈 깡통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미디어와이 = 홍인기 기자)   특별기간까지 운영하며 아파트비리 척결에 나선 경찰. 그러나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지역 토착세력이 연루된 워낙 황당한 사건이다 보니 경찰 수사가 제대로 될까 불신에서부터, ‘털면’ 누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스캔들’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경기도 오산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화성동부경찰서 지능수사팀은 최근 오산 부산동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자 대표 A씨와 국내 유력 페인트기업인 노루페인트 영업사원 B씨를 불러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루페인트는 아파트 도색을 하고 있는 이 아파트 단지에 이달 13일과 17일 최소 두 차례에 걸쳐 도색작업에 필요한 에폭시 2160통 가량을 납품했다.

그러나 노루페인트가 납품한 자재는 대부분 빈 깡통인 채로 배달됐다.

▲ 아파트 도색을 위해 납품된 노루페인트 에폭시. 뜯어보니 맹물만 가득...

“이런 황당한 일이” 아파트도색 페인트 통 뜯어보니 모조리 빈 깡통

사건이 드러난 것은 주민제보였다. 이 아파트단지의 주민들은 잠복까지 한 끝에 현장을 확보하고 18일 경찰에 사건을 제보했다.

노루페인트는 아파트 단지 인근에 창고를 임대해 빈 에폭시 통을 쌓아놓고, 누군가가 통에 물을 채워 놓는 모습이 포착됐다. 

물로 채운 이 통들은 도색이 한창인 아파트단지로 옮겨져 마치 정상제품인 것처럼 위장됐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 노루페인트가 짜고 공사 자재비를 부풀리고 있다는 강력한 정황이 확보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맹물 에폭시는 13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한번에 1080통씩, 금액으로 2억 원 어치 가량이 아파트에 납품됐다. 

진정서를 접수한 화성동부경찰서 지능팀과 관할 지구대는 18일 창고로 출동해 사건 현장을 확인했다.

입주자대표가 업체와 짜고 수억대 공사비 부풀린 정황

이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자재납품업체로 노루페인트를 선정하는 과정부터 의혹투성이다.

통상 시공업체를 선정하고 시공업체에 도색에 사용할 페인트 종류를 지정해 주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지만, 이 아파트단지는 페인트 자재 납품업체와 시공업체를 따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의 한 관계자는 “공사 자재비(페인트 물량)도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고 주장했다.

이 아파트단지는 페인트 자재비용으로 총 8억3000만원 물량을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비용은(3억7000만원)은 따로 시공업체와 계약했다. 

이렇게 해서 총 공사계약 비용은 12억원, 세금까지 합하면 13억2000만원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이 아파트단지의 장기수선 충당금에서 빠져나가는데, 공사가 일부 진행된 현재 계약금 4000만원과 물품대금 1억8000만원을 합해 2억2000만원 정도가 지급됐다. 

일부 주민 등 관계자들은 입주자대표 A씨가 처음부터 공사비를 부풀릴 목적으로 노루페인트와 사전에 뒷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공사를 하면서 맹물인 것을 몰랐을 리 없는 시공업체 또한, 노루페인트의 주선으로 계약을 맺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집게차가 창고에서 빈 통들을 치우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수상한 경찰 초동대처...범죄 증거물 고물상이 싹 치워

결국 주민들에게 꼬리가 잡힌 황당한 ‘맹물 페인트’는 경찰제보로 이어졌고, 화성동부서는 18일 현장에 출동해 범행현장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찰은 허술한 현장 대응을 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찰은 출동 당일 창고에서 시료채취도 하지 않고 철수하며 현장을 그대로 방치했다.

이후 아파트단지 등 다른 장소에서 시료를 채취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창고에 가득했던 빈 통들은 18일부터 19일 양일간 누군가에 의해 말끔히 치워졌다.

화성동부서 지능팀은 “출동한 경찰이 직접 현장을 확인했고, 사진까지 찍어놔서 초동대처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경찰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사라진 빈 통들은 누군가의 연락을 받은 고물상이 치워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 관계자는 “당시 현장에서 시료도 채취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검사는 물론이고 정확한 수량 파악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 문제의 아파트단지에 이번 사건의 전말을 알리는 공고문이 걸렸다.

전 경찰서장이 사건연루 의혹 업체 고문으로 재직...유력인사 많이 거론돼 “계좌추적 제대로 될까” 불신도

경찰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경찰에 대한 불신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서는 A씨와 B씨의 계좌추적이 핵심인데, 일부 관계자들은 이 조차 제대로 진행될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오산지역에서는 다들 한 가닥씩 한다는 사건 연루자들의 배경 때문이다.

A씨는 오산지역 한 기업체의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차기 한국노총 오산지회장으로 거론될 만큼 지역의 정가와 관가에 영향력이 넓다는 것이다.

더구나 유력업체에 근무하는 B씨 역시 혼자 이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만큼, 노루페인트 회사 전체 문제로 사건이 확대될 수도 있다. 

더구나 이 사건에는 알려지지 않은 한 인물이 더 있다.

문제의 아파트단지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경비업체 대표 C씨인데, C씨는 이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 시기와 맞물려 회사법인 통장으로 A씨에게 200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 또한 오산지역에서는 정관계에 마당발로도 유명하다.

경찰이 창고로 출동한 18일경 A씨는 C씨에게 이 돈을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주고받은 시기를 감안할 때 이 돈이 맹물페인트 사건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C씨는 그러나 “쌀집을 따로 경영하는 A씨가 사정이 어려워 개인적으로 빌려준 돈”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건이 불거지자 바로 되돌려 받은 상황에 대해서는 “혹시라도 이 사건으로 오해를 받을까 이자까지 포함해 돌려받았다. 차용증도 있다”고 밝혔다.

C씨의 주장은 그렇지만, 이 아파트 주민 등이 경찰조사가 과연 제대로 될까 의구심을 보내는 부분은 C씨가 연루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C씨가 운영하는 경비업체에는 화성동부경찰서 서장을 지냈던 인물이 고문으로 활동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A씨와 B씨, C씨의 계좌추적이 핵심으로 보이지만, 털면 누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찰이 과연 제대로 된 수사를 할까 불신이 조금씩 커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위의 우려가 있지만, 경찰은 그러나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화성동부서 지능팀 관계자는 “아직 수사 중이라 자세한 말은 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10여 명을 조사했다. 만족할만한 수사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