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희망버스'

▲ 박용석 정치부장 ⓒ뉴스톡
27일 부산시청 광장에서는 1500여명이 참가한 ‘희망버스 규탄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우파단체도, 사용자측도 아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집회였다. 노동자들은 집회에서 ‘한진중공업 정상화를 위해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하고 “정리해고 문제는 노사 당사자가 해결해야 하며 일부 정치권과 노동계 등의 부당한 간섭은 배제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를 위한 투쟁을 하겠다며 부산으로 달려가는데, 정작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오히려 희망버스를 규탄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한진중공업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거부하는 희망버스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부산으로 달려가는 것일까?

◆ 한진중공업 사태, 누구와 누구의 싸움인가?

한진중공업 사태를 바로보기 위해서는 먼저 ‘대립의 구도’를 살펴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노사분규란 회사 내의 사용자와 노동자 측의 대립을 말한다. 그러나 한진중공업 사태는 노사분규의 구도를 벗어난 지 오래다. 회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외부인들이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몰려들어 노사양측을 공멸로 몰고 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단 200일이 넘게 고공시위를 벌이며 희망버스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민노총 소속 김진숙씨에 대해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김씨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김진숙씨는 1981년 대한조선공사에 여성 용접공으로 입사한 후 1985년 해고됐다. 그녀는 1987년 대한조선공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을 냈으나 법원으로부터 기각이 되었다.

이후 대한조선공사는 부도가 났고, 정부의 사업합리화 일환으로 한진그룹이 인수하여 한진중공업이 탄생한 것이다. 김진숙씨는 해고된 지 25년이나 지난 2010년 뜬금없이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복직소송을 낸다. 그러나 소송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라 자진취하를 한다. 따라서 김진숙씨는 ‘외부인’이며 한진중공업은 김진숙씨의 해고에 법적, 도의적 책임이 없는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슈화 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또 다른 사람 역시 외부인이다. 배우 김여진씨는 지난 1월 홍대 청소노동자 처우개선문제부터 반값등록금 등 사회 이슈에 참여하더니 지난 달 한진중공업 농성에 참여를 했다. 어느 독설가의 말처럼 연예뉴스에 한번도 못 나오던 김여진씨는 그 덕분에 이후 연일 아홉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도대체 김여진씨가 한진중공업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여진씨의 이번 선택이 자신을 위해서는 현명했다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의 노사가 죽던 말던, 부산 지역경제가 무너지던 말던 본인은 어쨌든 떴으니 말이다. 인기가 쇄락한 연예인들이 정치적 이슈에 참여하여 뜨는 풍조도 우리사회의 후진성의 일면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외부인 김진숙씨가 구심점이 되고 또 다른 외부인 김여진씨가 바람몰이를 하여 수많은 외부인이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에 정작 당사자인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과 부산시민들은 희망버스를 규탄하며 “제발 오지 말라”고 절규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사태는 노사의 문제가 아닌 ‘한진중공업 노사와 외부세력과의 대립구도’인 것이다.

◆ 실종되어버린 수 많은 진실들...

희망버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한진중공업의 경영상황이 여전히 좋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정리해고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그들은 첫째 한진중공업이 값싼 임금을 위해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짓고 그쪽으로 일감을 빼돌리며 영도조선소 노동자들은 부당하게 정리해고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는 사측이 주주들에게 174억의 현금배당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진중공업은 도덕적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조선업계는 극심한 불황을 맞았다. 그 결과 중소형 조선소들은 줄도산이 나고 대형조선업체만이 한 자리 수 영업이익률로 간신히 현상유지를 하는 상황이었다. 중견업체 정도 되는 한진중공업 역시 타격을 면치 못했다.

희망버스 옹호자들은 한진중공업이 2010년에도 1조943억 매출에 1,49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수주를 받고 건조기간이 2~3년 걸리는 조선업계 특성상 2010년 영업실적은 2007~2008년의 수주결과로 봐야 한다. 문제는 지난 3년간 한진중공업의 수주가 거의 없으며 그 결과는 2011년 실적부터 반영이 된다는 점이다. 물론 수주가 없으니 결과도 좋을 리 없다.

한진중공업의 이러한 부진의 이유는 경쟁력 저하에 있다. 현대, 대우, 삼성 등 이른바 빅3와 단가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영도조선소의 ‘태생적 한계’에 있다. 영도조선소의 부지는 약 8만평 정도로 250만평 규모의 현대중공업이나 150만평 규모의 삼성, 대우 중공업과 비교가 안 된다. 따라서 수지가 맞는 대형 선박 건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진중공업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 영도조선소를 대체할 부지를 물색해 왔다. 그러나 신규부지 마련에 실패를 하고 결국 2005년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건조한 것이다. 이후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에서 대형선박 건조가 가능해졌다. 수빅조선소 건립의 이유가 멀쩡한 영도조선소를 놔두고 일감을 빼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한진중공업이 174억원의 현금배당을 했다는 주장 역시 터무니 없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지난 해 배당은 현금배당이 아니라 주식배당이기 때문이다. 주식배당은 일반적으로 기업의 재무사정이 악화되었을 때 쓰는 방법이다. 실제로 현금배당을 하지 않고도 주주들의 반발을 무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금배당 운운은 악의적으로 퍼뜨린 헛소문인 셈이다.

◆ 한진중공업 사태의 진행과정은?

위와 같이 영도조선소는 부지가 좁아 생산단가가 높고 단위생산성은 낮은 반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임금과 복지는 업계 최고수준이었다. 파업 없이 정상적으로 일한 2008년의 경우 생산직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6000만원 선에 달했고, 노조는 국내조선소 중 최다 휴일을 대놓고 자랑할 정도였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치며 상황이 역전이 된다.

낮은 생산성에 고비용을 견디지 못한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12월 생산직 노동자 400명을 구조조정하기로 결정한다. 무작정 정리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퇴직을 받고 신청자에 대해서는 15개월 치의 임금을 추가로 지불한다는 조건이었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볼 때는 호사스러운 조건이다. 그러나 노조는 거부했고 결국 12월 2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1월에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크레인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2월까지 230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남은 170명에 대해 회사는 정리해고를 한다. 이후 노조는 더 크게 반발했고 배우 김여진씨가 시위에 참여를 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이슈화 된 것이다. 결국 지난 6월 27일 노사는 합의하고 희망퇴직자에 대해 22개월 임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다.

노사 합의 후 지난 17일까지 170명의 정리해고자 중 73명이 희망퇴직으로 전환을 하고 22개월치의 임금을 위로금으로 전달받았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들은 노사합의 이후에도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40여명의 강경파만 빼곤 대부분 희망퇴직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진숙씨나 희망버스 같은 ‘외부인’들이 한진중공업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3차 희망버스는 7월 30일 출발 예정이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희망의 버스 대국민 제안문’을 통해 7월 30일 부산을 제2의 광주로, 제2의 6.10항쟁으로, 제2의 촛불광장으로 열어나갈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앞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제2의 부마항쟁 운운하며 희망버스를 선동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와 싸우겠다는 것인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부산시민들?

◆ 희망버스는 우리사회의 총체적 문제점을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

한진중공업 사태는 현재 우리사회가 직면한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이번 사태는 인터넷 등을 통해 행해지는 ‘다수에 의한 정보의 왜곡’을 보여준다. 진실된 정보가 간혹 있더라도 희망버스 옹호자들의 수많은 왜곡된 정보가 인터넷에 도배되면서 국민들은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예로 많은 국민들은 한진중공업과 상관 없는 외부인인 김진숙씨를 이번 정리해고의 피해자 당사자로 인식을 하고 있다. 또한 수빅조선소 건설을 일감을 빼돌리기 위한 회사측의 농간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어려운 상황에서 주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실시한 주식배당을 돈이 남아 현금배당을 한 것으로 오해하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다.

둘째는 진보진영이 옹호하는 대상이 사회적 약자인 서민이 아닌 귀족노동자들이란 점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평균연봉 6천만 원의 귀족 노동자들이다. 또한 정리해고의 대가로 퇴직금 외에 22개월 치의 월급을 챙겨갔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호사다. 그들을 위한다는 파업 때문에 정말 어려운 협력업체 직원들은 죽어나고 있다.

얼마 전 저축은행 국조특위 위원인 민노당 이정희 대표는 일본 외유를 하느라 몇 차례의 현장조사에 모조리 불참해 저축은행 피해자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정말 도움을 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는 철저히 외면을 하면서 민노총 소속의 귀족 노동자들의 호사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우리사회의 진보진영... 그들에게 있어 서민은 그저 ‘이용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불법행위의 용인이다. 한진중공업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김진숙씨가 크레인을 무단 점거하고 200일이 넘게 조업을 방해하고 있다. 또한 희망버스란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불법적인 시위를 벌이며 사유재산에 피해를 주고 있다. 노사합의가 끝난 지금 이런 행위는 더 이상 노동법이나 노동삼권 같은 개념도 성립이 안 되는 문제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부산시민들까지 반대를 하고 규탄을 하는 희망버스는 결국 사유재산 침해요 외부인의 테러행위로 규정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공권력은 손을 놓고 관망만 하고 있다. 법치보다는 정치적 계산이 앞선 나약한 정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나약함은 지역주민들과 한진중공업 노사의 피눈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 자유에 대한 진정한 적은...

한진중공업을 향해 떠나는 제3차 희망버스... 이것은 이미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한진중공업과 외부세력의 대립이며 부산지역 서민들과 귀족노동자의 대립이다. 법치와 불법의 대립이며 진실과 왜곡의 대립이다. 희망버스를 옹호하는 사람 중엔 잘못된 정보에 속은 선량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무지를 통해 희망버스를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모습을 보며 “자유에 대한 진정한 적은 선량하지만 무식한 열성분자들”이라는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판결문이 생각난다. 조직화 된 힘으로 인터넷을 통해 왜곡과 거짓을 유포하는 소수의 악당들, 거기에 속아 열성적으로 그들을 옹호하는 다수의 선량하지만 무지한 사람들, 희망버스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블랙코메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