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땅 팔라며 찾아온 軍, 아파트 30채 값 채무 대납 요구
대체 보상 약속에 사채 빚까지 졌지만 남은 땅까지 강제 수용
국민의 생명과 재산 지켜야할 군이 민간인 상대로 사기 행각
 
(미디어와이 = 홍인기 기자)   전두환 정부 시절, 군부가 사기와 협박으로 민간인의 땅을 빼앗으며 한 가족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간 황당하고 기막힌 사연이 드러났다.

이부남 할머니(85·사진1)의 삶은 지난 1987년에 멈춰져 있다. 30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세월만큼이나 이 할머니의 가슴에는 억울함과 한이 쌓여만 왔다. 이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전현희)는 최근, 지난 1987년 국방부가 육군정보학교를 이전하며 토지의 소유권을 이전해 가는 과정에서 이부남 할머니 가족에게 입힌 손해를 배상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국민권익위의 조사 내용을 보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할 군이, 그 책무를 망각하고 벌인 파렴치한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어떤 사연일까. 

◇ 어느 날 갑자기 땅 내 놓으라며 들이닥친 군부

▲ 30년 넘는 세월 쌓인 억울한 사연을 털어놓고 있는 이부남 할머니(사진1).

1986~87년, 당시 전두환 군부는 용인에 있던 육군정보학교 이전 부지로 경기 이천군 장호원읍 이황리 땅(410-6번지, 4필지 총26716㎡ 약 8028평·이하 토지1)을 점찍었다. 

토지1은 등기부상으로는 A씨 명의로 등기된 땅이었지만 실제 소유권은 이 할머니의 남편인 김춘기 할아버지에게 있었다. 토지1과 붙어있던 토지2(7185㎡, 약2173평)도 마찬가지.

A씨가 이천군으로부터 해당 부지를 임대 받아 경작을 해 오던 중 불하를 받을 때, 불하대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친구사이였던 김 할아버지가 불하대금을 대납했던 것. 나중에 땅을 매각하게 될 일이 생기면, 불하대금을 제외한 차익금을 반반씩 나누자는 계약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군이 토지1을 매입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해당 부지에 여러 건의 담보가 설정돼 있었던 것. 토지1,2의 근저당 설정 금액은 총 2억3200만 원에 달했다.

당시 잠실 중소형대 아파트 한 채 가격이 800만 원 정도하던 시절. 무려 아파트 30채에 버금가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모두 등기상 소유주였던 A씨가 진 빚으로, 김 할아버지가 변제해야 할 의무가 없는 채무였다.

담보 설정을 먼저 해제하기 전에는 땅을 매입할 길이 없자 군은 처음에는 A씨에게 근저당설정등기말소를 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A씨가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없음을 알게 되자, 땅의 실제 소유자인 이 할머니 가족을 찾아왔다.

남편 옆에서 자녀들과 함께 단란했던 가족, 평온했던 일상을 꾸려가던 이 할머니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아파트 30채 값 채무 대납 강요하며 대체보상 회유

▲ 육군정보학교장이 당시 이천군수에게 보낸 공문. 토지1 소유권자에게 군청 소유 부지를 임대해 주는데 협력해 달라는 내용이다(사진2).

1986년 11월 군은 법원에 7151만 원을 공탁하고, 이 할머니 가족을 찾아와 토지1에 설정돼 있던 근저당을 A씨 대신 변제하고 말소해 줄 것을 요구했다.

가족은 당연히 군의 요구를 거부했다. 땅에 설정된 근저당을 풀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을 뿐더러, 남의 채무를 대신 갚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의 강요와 협박, 회유는 수개월에 걸쳐 집요했다.

군은 ‘대체보상’을 약속했다. 토지1과 붙어있는 나머지 7185㎡(약2173평) 땅(이하 토지2)은 수용하지 않고, 그곳에 3층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땅값도 올라가고 건물에서 장사를 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또, 이천군 소유 예비군훈련장 부지 3만 평을 이천군으로부터 임대 받아 경작을 하게 해 주고, 군부대에서 나오는 잔반을 공급해줄 테니 그곳에서 양돈장을 운영하라는 제안도 했다.

이 할머니 증언에 따르면 군은 동시에 협의매매에 응하지 않을 시 이 할머니의 아들들을 삼청교육대에 집어넣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군부 권력이 막강했던 시절. 이 할머니 가족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87년 11월 결국 군은 토지1의 소유권을 이전해 갔다. 

◇ 군 약속 믿고 빚더미에 올랐지만, 또 다시 땅 빼앗겨

군의 약속을 믿고 토지1,2에 설정돼 있던 근저당을 풀기 위해 이 할머니 가족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공탁금과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액수의 급전을 끌어와 근저당 채무를 말소하느라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하고 오히려 빚더미에 나 앉게 됐다.

친인척한테 돈을 빌리고, 김 할아버지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던 땅 여러 곳을 급매로 헐값에 넘겼다. 은행에 다니던 딸은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며 퇴직금을 보탰다.

그것도 모자라 사채업자로부터 수천만 원의 빚을 졌다. 이 할머니 시동생은 급하게 돈을 마련하느라 살고 있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도 했다. 땅 소유권을 둘러싼 여러 복잡한 사정을 정리하기 위한 A씨와의 오랜 소송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전 재산을 탈탈 털어 넣었지만, 빚은 빚을 낳고 사채 이자는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 순 간에 궁핍해진 생활도 억울했지만, 빚 독촉에 하루하루 가슴 졸이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또 날아들었다. 군이 수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토지2마저 빼앗아 간 것이다.

군은 1994년 6월 법원에 9583만 원을 공탁하고 땅을 강제 수용해 갔다. 육군정보학교 후문 근처에 민간 사유지가 있는 것은 안보상 위해요소가 된다는 이유였다.

◇ 군이 민간인 상대로 사기 친 황당한 사건...몰락한 가

▲ 육군정보학교장이 써준 확인서. 토지2에 건축물을 짓는데 동의한다는 내용이다(사진3).

이 할머니 가족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군은 요지부동이었다. 다시 수천만 원 소송비용을 마련해 토지수용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지만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정부는 바뀌었지만, 결국 군이 대체보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기를 친 셈이다.

남게 된 빚만 지금도 산더미. 이 할머니는 수십 년에 걸쳐 군에 민원을 내고 그동안 가족이 입은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이에 군도 이 할머니의 사연이 안타까웠는지, 육군본부 한 관계자는 이 할머니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당시 육군정보학교장의 확인서 등을 제시하면 원하는 보상을 해 주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이 할머니가 우여곡절 끝에 1987년 당시 육군정보학교장(육군제8371부대장)이 직접 ‘토지2에 군청으로부터 건물신축허가를 받아 건물 신축시 이에 동의한다’고 써준 확인서를 찾아낸 것이다<사진3>

당시 이천군수에게도 이천군 소유 예비군훈련장 부지를 임대해 줄 것을 협조해달라고 보낸 공문도 함께 찾아냈다<사진2>.

이 할머니의 주장이 명확한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군은 또 다시 태도를 바꿨다. 도의적으로는 미안한 일이지만, 법적으로는 책임질 일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2007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군이 이 할머니 가족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군은 그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 재조명 된 전두환 군부의 횡포...文 정부 선택은

▲ 국방부가 이부남 할머니에게 보상하라는 내용의 국민권익위원회 의결문(사진4).

군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이 할머니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남편은 분노와 회한 속에 먼저 눈을 감았고, 곁을 지키던 장남마저 지난 2013년 40대 아까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할머니의 큰 아들은 가세가 몰락하자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성실하게 집안의 빚을 갚아 나갔다. 하지만 보일 듯 보일 듯 다시 사라지는 희망과 고통의 시간이 반복되며 삶의 기력을 잃었다.

이 할머니는 “보상이 될 것 같았었는데 또 군은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희망이 보였다가 또 실망하고는 했다. 얼마 후 아들이 술을 마시고 왔는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아들이 떠났다”고 했다.

이 할머니 가족의 고통은 지금도 여전하다. 빚은 이자가 쌓여 지금도 수억 원대에 이른다. 둘째 아들이 그 일부를 갚아 나가는 중이지만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 요원하다.

이 사건이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국방부에게 이 할머니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의결했기 때문이다<사진4>.

국민권익위는 2020년 11월 2일, 육군정보학교장이 1987년 토지1에 대한 소유권을 국가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민원신청인이 변제할 의무가 없는 근저당 채무를 갚도록 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신청인에게 발생시킨 손해를 국가배상법에 따라 배상할 것을 군에 의견 표명했다.

억울한 사연을 접한 법무법인 민우 김다섭 변호사가 이 할머니를 곁에서 오랫동안 도왔다. 일부 여야 국회의원도 이 문제를 다시 공론화 하는데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공은 다시 군으로 넘어왔다. 전두환 정부 시절의 군부독재가 불러온 한 가족의 불행을 지금 문재인 정부의 군은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봐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