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만남, 경기도人 (41)] 장준호 경인교대 교수

▲ 장준호 경인교대 윤리학과 교수.
제18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민에게 필요한 정치인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 책이 있어 눈길을 끈다.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장준호(42) 교수의 저서 <개념 있는 정치 VS 개념 없는 정치>(북쇼컴퍼니 펴냄)다.

장준호 교수는 독일 유학파 출신으로 정치철학에 일가견이 있다. 뮌헨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뮌헨대 정치학과에서 정치철학을 강의했다.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 경인교대에 적(籍)을 두고 있다.

장 교수의 관심분야는 동서양 정치철학과 국제정치, 외교통일이다. 통일분야에서 그는 경기도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경기도 통일교육아카데미’와 공무원 교육 등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월 독일 베를린에서 김성렬 경기도 행정1부지사와 도내 5개 기초단체장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공감 통일비전 아카데미 지자체 리더반’에도 전문가로서 참여했다.

지난 9월 펴낸 이번 저서에서 그는 ‘정치란 본래 아름다운 것이다. 공동체의 행복을 실현하는 최고의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서두를 뗀다. 일반 대중의 정치 혐오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치를 아름답지 않게 만든 것이라고 뼈 있는 답을 내놓는다.

장 교수는 본래적 개념에 충실한 아름다운 정치를 개념 있는 정치, 정치의 본래적 개념에서 벗어난 불미한 정치는 ‘개념 없는 정치’로 대비해 국민에게 필요한 정치인의 표상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시한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화두로 꺼낸다. 프로네시스는 의사소통을 통해 올바르게 계획하는 능력이다. 애매모호한 경우 조언과 숙고를 통해 영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또 타인의 입장에 서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장 교수는 프로네시스를 갖춘 ‘영리하고 현명한 정치가(프로미노스, phrominos)’의 정치를 개념 있는 정치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정치인은 프로미노스의 ‘소통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 책은 개념 있는 정치가의 자화상을 독자에게 제시하기 위해 그는 어떤 정치가 정의와 행복을 구현하는지 접근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소크라테스, 플라톤부터 헤겔, 존 롤스, 하버마스, ‘정의’ 신드룸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 ‘위험사회’ 담론으로 잘 알려진 울리히 벡까지 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철학자, 사회학자의 견해와 저서를 인용한다. 책 후반에는 지방자치와 사회통합의 선진모델로서 독일과 스위스의 지방자치제도와 직접민주주의를 다루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치철학을 다루면서도 <개념 있는 정치 VS 개념 없는 정치>는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게 읽힌다. 가상인물과 실제인물이 대화를 나누는 식의 소설적 기법과 상상력이 가미된 정치철학 에세이로 쓰였다. 재미난 것은 이 책의 본문 첫장과 마지막 장의 끝 문장이 똑같다는 점이다. ‘걸었다’는 서술어 한 마디다.

장 교수는 “사람은 걸으면서 사색한다. 걷는 것이야말로 철학자의 모습, 개념 있는 시민의 모습이 아닌가. 그걸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의 집필 의도는 명확하다. 그동안 개념 없는 정치인이 판치면서 민생은 피폐해지고 사회불안은 심화했다. 개념 없는 정치인을 뽑은 건 국민 스스로다. 이제 개념 있는 정치인을 뽑을 때다. 그래야 정치가 왜 아름다운지 국민이 몸소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념 있는 정치의 빗장을 더욱 풀어보기 위해 장준호 교수를 찾은 건 겨울 초입. 삼막사 입구에 자리한 경인교대 안양캠퍼스에서 정치하면 권모술수부터 떠오르는 기자는 왜 정치가 아름다운지 그에게 차근차근 물었다.


▲ 장 교수는 본래적 개념에 충실한 아름다운 정치를 개념 있는 정치, 정치의 본래적 개념에서 벗어난 불미한 정치는 ‘개념 없는 정치’라고 정의한다.
-‘프로네시스를 갖춘 프로미노스를 뽑자’는 게 이 책의 주제로 읽힌다. 집필 배경은?
“대선을 앞두고 시민들이 조금 더 정치란 무엇인가 고민해보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올해 대선정국을 흔든 안철수 현상도 결국 정치 불신 때문에 나온 것이다. 정치 불신은 정치인이 잘못해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민이 좀더 고민하면서 정치인을 뽑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에서 중요한 개념어, 특히 정의나 행복, 자유, 복지, 평화, 교육의 문제 등에 관해 깊이 고민해 투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념 있는 시민이 돼서 개념 있는 투표를 해 개념 있는 정치인을 뽑아 우리나라에 개념 있는 정치가 실현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 책을 쓴 이유다.”

-개념 있는 정치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공적 영역에 대한 이해다.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을 획득하고 확장·유지하는 마키아벨리식 정치여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공동체에서 생기는 공적인 사안에 대해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공적 영역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를 경험적·이론적으로 알고 있어야 개념 있는 정치인이다.
둘째는 프로미노스, 기본적으로 소통할 줄 아는 영리한 정치인이다. 자기가 부족하면 전문가나 다른 정치인, 시민과 대화하고 합의하면서 영리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어야 한다.
셋째가 가장 중요한데 허상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능력이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네트워크적인 사유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조그만 문제도 전체 사회시스템과 연계해 발생한다. 전체와 부분을 연결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정치는 굉장히 포괄적인 영역이다. 그 안에는 정의, 분배, 평화, 복지, 자유 등 다양한 문제가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 것을 이해하고 소통을 통해 영리한 결정을 내리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문제를 풀고, 네트워크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개념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개념 있는 정치인을 뽑으려면 시민도 개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민에게는 두 가지 덕성이 필요하다. 첫번째는 윤리적 덕성이다. 자기 절제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시장경제다. 시장경제는 인간의 욕구가 중요하다. 일을 통해 임금을 받고 자기가 받는 임금 선에서 욕구가 충족되는 사회다. 사회 내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시민이 탄생한다.
사회가 건강할수록 시민이 자기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물질적인 기반이 두텁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 시민은 극단적으로 욕구의 노예가 돼선 안 된다. 극단을 피할 수 있는 자기 절제 능력이 중요하다.
두번째는 지적 능력이다. 지적 능력 중에서도 남의 말을 잘 듣고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소통의 능력, 교육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성찰·반성의 능력이 중요하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살기 때문에 절제할 수 있는 능력,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 것을 기초로 해서 공적 영역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적인 사회가 추구하는 큰 목표와 개인적인 목표 사이를 저울질하면서 어떻게 하면 개인적 이익도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목표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가를 같이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게 개념 있는 시민이지 않나 생각한다.”

-책을 보면 ‘어떤 정치가 정의를 구현하는가’부터 개념 있는 정치에 접근하고 있다. 개념 있는 정치인이 가져야 할 정의 개념은 무엇인가.
“일반사람들은 분배 차원에서 정의를 얘기한다. 나는 사회조직적인 측면에서 정의를 얘기하고 싶다. 같은 건 같게, 다른 건 다르게 대우하는 게 정의다. 그리고 각자의 본성, 재능에 맞춰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조직화해 주는 게 정의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음악인으로 성장하도록, 미술 잘하는 사람은 미술가로 자라도록 해주는 게 정의란 얘기다.
세 가지가 중요하다. 같은 건 같게, 다른 건 다르게 대우해주는 것과 각자가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다음이 인간의 기본권,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복지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 이게 정치인과 시민이 상식 차원에서 정의라고 했을 때 가져야 하는 개념이라고 본다.
현대적 의미에서 정의는 공평한 기회다. 공평한 기회를 줬을 때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불평등이 생긴다. 불평등 허용의 조건은 복지다. 사회 속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을 때 불평등이 허용된다.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교육, 의료서비스, 일자리 등 다양하고 공평한 기회를 주면서 경쟁시킨다. 그러면 불평등이 생기는데 어느 정도 재분배가 돼야 한다. 가장 많이 가진 자의 것을 세금을 통해 재분배함으로써 가장 소외된 계층이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게 일반 시장경제 안에서 분배적 의미의 정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엿보인다.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실현하는 국가전략으로 독일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영미식 자본주의 모델의 근간이 되는 게 신자유주의다. 사실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은 극단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 모델과 영미 모델에는 차이가 있다. 공통점은 시장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되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미 모델은 시장이 최대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시장 자체의 제도와 매커니즘을 존중한다. 국가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의해 분배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반면,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이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게끔 도와주면 사회적 불평등이 생긴다. 영국 모델은 빈부격차가 생기면 개인 책임이다. 실업은 자기 책임이다. 자기가 능력 없고 불성실해서 실업자가 됐다는 논리다.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는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적 책임이다.
인간의 기본권을 사회에서 보장해줘야 한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이 가능한 가운데 시장이 돌아가게끔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이 사회적 시장경제다. 정의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공평한 기회와 분배에서 영미 모델이나 독일 모델 중 어느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적합한지 고민해봐야 한다.
2008년 촉발한 세계경제위기 이후 4년이 흐르면서 유럽에서 유일하게 경기상승곡선이 꺾이지 않고, 임금이나 실업률이 더 나빠지지 않은 국가는 독일밖에 없다. 성장과 복지를 모두 성취한 것이다. 그 이유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국가 전략 아래 사회 전반에 걸쳐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고 사회적 협약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면서 민간과 거버넌스를 형성한다. 정치인, 기업, 노동자, 시민사회 등 다양한 대화 상대가 모여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국가전략을 어떤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합의한다.
독일은 종합제조업인 자동차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세계경제위기로 독일 노동자의 임금은 동결된 상태다. 기업 차원에서는 인건비 지출이 줄어들다 보니 경쟁력이 더 강해졌다. 노동자의 임금이 동결됐음에도 독일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위기를 받쳐주는 ‘쿠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복지다. 모든 걸 시장에 맡기지 않고 거버넌스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에 이런 위기 관리가 가능하다.
물론, 독일 모델도 위험요소가 많다. 중요한 건 우리식 모델을 찾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영미식 모델을 너무 따라해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제 독일식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극단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는 아니다. 시장과 국가, 복지와 경쟁이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는 중도적 시스템을 갖춘 나라다. 독일 사례를 참고해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성찰해볼 시점이다.”

-책에서 ‘세계시민주의’라는 단어도 등장한다.
“세계시민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건 인권이다. 국가가 시민 개인과의 관계에서 최대한 개개인읜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게 세계시민주의의 입장이다. 또 ‘세계시민주의적 현실주의’라고 할 때는 국가가 시장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와 세계경제를 끌고 가면서 균형점을 맞춰가는 것을 뜻한다.
정치인이나 한 국가의 지도자라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해야 한다.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현실주의나 자유주의, 구성주의, 세계시민적 현실주의 등 다양한 이론적 관점을 알아야 국제정치를 보는 시각이 생긴다. 지금 세계질서는 지구 시민사회와 세계경제, 국가 이렇게 세 개의 축이 경쟁하고 있다. 국가가 지구시민사회와 세계경제 사이에서 샌드위치되기 보다 끌고 가는 형태여야 한다.”

-결국 개념 있는 정치인은 지속가능한 복지성장과 세계시민주의에 관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개념 있는 정치인이라면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고, 네트워크적인 사고방식을 갖춰야 한다. 인간은 욕망하고 꿈꾼다.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일자리가 필요한 존재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서민의 아픔, 가족의 중요성 등을 충분히 이해하고, 부분과 전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걸 경제논리로 푸는 건 위험하다. 정의, 평화, 환경, 복지 등 여러 가치를 서로 연결하면서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외교가 중요하다. 국가 지도자라면 국제정치에 대한 깊은 통찰도 필요하다. 국제정치는 힘의 논리로 관계가 결정된다. 지금은 미국의 헤게모니에 중국이 도전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이 두 개의 큰 축에 끼인 형국이다. 게다가 분단국가다. 국제정치와 외교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종합적인 능력을 갖춘 지도자야말로 개념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정치란 아름답다고 하셨다. 정치의 아름다움을 못 느끼는 시민에게 한 말씀한다면.
“우리가 겪는 현실정치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정치의 본래 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다. ‘본래’라는 건 아이디어, 개념이다. 정치의 개념 자체는 아름답다. 공동체의 행복을 실현하는 최고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아름답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다.
‘(책을 펴 소리내 읽으며)…정치는 공동체 구성원이 병이나 실직에 처했을 때 의료서비스와 실업수당을 제공해 불행을 견디게 하고, 좋은 교육을 통해 시민들이 윤리적, 지적인 덕성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정치는 외교·국방에 힘써서 분쟁과 전쟁의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서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좋은 법을 제정해서 정의가 구현된 공정사회를 만든다…’(6p) 정치가 이러면 아름답지 않겠는가.
현실 정치는 너무 추하고 문제점도 많다. 아비규환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이 상태로 계속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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