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부 창단과정과 갈등의 시작, 그리고 깨진 신뢰

화성시에서 빙상계의 어두운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데일리와이 5월 14, 15, 16, 20, 21, 22일 보도> ‘금품상납’, ‘룸사롱 접대’, ‘공금유용’, ‘공갈협박’ 등 과거 주먹세계에서나 어울릴 법한 단어들이 화성시청 빙상부를 둘러싼 의혹으로 제기된 것. 이 가운데 일부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고 일부는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 20대 지도자는 한쪽 손을 잃는 사고를 당했고 차가운 얼음판 위에서 꿈을 키워온 선수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 결국 황당하리만큼 불미스런 사건의 온상이 된 화성시청 빙상부는 창단 7개월여 만에 감독이 사임하는 등 사실상 존폐위기에 처했다. 선수들의 미래를 담보로 한 지도자들의 전횡과 자녀의 장래를 위해 이를 방조할 수밖에 없었던 학부모들, 그리고 관계당국인 화성시의 무책임함이 화를 키웠다. 이에 <데일리와이>는 화성시빙상부 파문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과정 등 사건의 전말을 정리했다.[편집자주]

▲ 빙상장이 갖춰진 화성 유앤아이센터 전경.
하나로 뭉쳐 빙상부 창단
때는 지난 2008년 12월. 문화복지시설 불모지였던 화성시는 병점동에 거금 746억원을 들여 빙상장을 갖춘 유앤아이센터를 건립했다.
이듬해 6월 빙상장 시설의 관리주체인 화성시문화재단은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 출신 이승훈(빙상부 감독·2012년 5월 16일 사직)씨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문화재단과 이승훈씨(엘리트 선수단 포함․이하 이승훈팀)는 각각 빙상장 홍보와 훈련장 무상이용이라는 상호 윈윈전략을 택하고 이를 명문화 했다.
이승훈팀에는 쇼트트랙 밴쿠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박승희 선수(화성시 소재 경성고 졸업)와 전북도청 소속으로 뛰던 계민정(국가대표 출신) 선수 등 다수의 선수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요소가 없었다. 오히려 화성시를 빙상메카로 만들자는 희망으로 똘똘 뭉쳤다. 경성고 출신의 박승희 선수를 내세워 실업팀인 화성시청 빙상부를 창단하기 위한 노력에 선수·지도자·학부모 모두가 동참했다.
예산삭감, 조례부결 등 우여곡절 끝에 2011년 4월 관련 조례가 통과되면서 화성시청 빙상부 창단이 가시화됐다. 선수·감독·학부모 모두가 원하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전재목 등장 그리고 시작된 갈등
호사다마라 했던가. 빙상부 창단을 앞두고 이들 사이에 쇼트트랙 승부조작 파문으로 2년 전 대한빙상연맹에서 제명된 전재목 코치가 등장하면서 견고했던 이들의 신뢰는 깨지기 시작했다.
이승훈씨가 빙상부 감독으로 내정되자 전재목 코치는 엘리트선수단 지도자로 활동하며 자연스레 유앤아이센터 빙상장 무상이용 권리를 승계했다. 동시에 연간 3억원의 혈세가 관리비로 소요되는 빙상장은 자격 잃은 지도자의 돈벌이 장소로 전락했다.
학부모에 의하면 이 기간 이승훈씨는 빙상계 인맥을 활용, 유앤아이센터 빙상장을 장악하고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출전 및 대학진학 등을 명분으로 전횡을 일삼았다.
최근 제기된 의혹 가운데 금품상납 강요와 후원된 스케이트 날 강탈, 빙상장비 헐값 처분 등도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
일부 선수와 학부모들은 승부조작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는 것을 비롯해 이승훈씨의 지도체제 전반에 대해 부담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 사이의 불신은 커져만 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11년 10월 화성시청 빙상부는 박승희 선수를 필두로 공식 창단을 맞았다.  그러나 전재목 코치 등장에서 비롯된 선수영입 문제를 놓고 감독-선수 간 갈등의 골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다.

뒤바뀐 약속에 깨진 신뢰
당초 화성시는 3명의 선수영입을 계획했으나 예산부족으로 빙상부 창단의 핵심이던 박승희 선수만을 우선 영입했다. 당시 출중한 기량으로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던 박 선수는 훈련동지였던 계민정 선수와 함께한다는 조건으로 화성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는 이승훈씨도 사전에 합의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추가 선수영입 시에도 계민정 선수가 아닌 전재목 코치 휘하에 있던 선수가 대상으로 거론됐다. 이로 인해 전북도청 소속으로 활약하던 계민정 선수는 이승훈씨의 말만 믿고 화성시로 터전을 옮겼다가 무적 신세로 전락했다.
쇼트트랙 선수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까닭에 계민정 선수는 인생에 있어 그 어느때 보다도 중요한 시간을 놓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선수도 모르는 선수임용계약서가 작성됐고 신뢰를 잃었다고 판단한 박 선수와 일부 엘리트 선수들은 전재목 코치에게서 지도 받기를 거부했다. 빙상부 창단의 핵심이었던 박승희 선수는 계약철회까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초를 다투는 쇼트트랙 경기 특성상 신뢰에서 비롯된 코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중재해야 할 화성시는 빙상장을 무료로 사용하며 사적인 돈벌이에 나선 전재목 코치에 대한 제재는 뒷전으로 한 채 선수와 학부모의 희생만을 요구했다.
결국 한 팀이던 이승훈씨와 박 선수는 결별하게 됐고 빙상부는 시작과 동시에 파행을 거듭했다.
박 선수 부모 등은 그간 빙상장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 해결을 위해 채인석 시장까지 만나는 등 수차례 화성시를 방문, 고충을 토로했지만 자신들의 관리소홀로 인한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했던 화성시는 이를 쉬쉬했다.
결국 이달 초에는 박 선수를 지도하던 경성고 조남규 코치가 빙상부 파문에 휘말리면서 한 쪽 손목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