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화성시에는 돈줄이 메말랐다. 시에서 추진하는 각종 사업은 ‘돈’의 장벽 앞에 굴복했다. 시민과 나눴던 거창한 약속도 돈가뭄 앞에서 속수무책이 됐다.

“전임시장이 방만하게 운영했다”, “현직 시장은 노력도 안하고 탓만 한다” 등 정치권에서는 네 탓 공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시민은 정작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시민 입장에서는 ‘위기를 만들어낸 사람’도 또 그 ‘위기를 극복해야 할 사람’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였음에도 말이다.

돈 때문에 무산된 향남 의료복지타운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8억4400만㎡의 거대한 면적의 화성시가 고작 1만여㎡의 병원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한 지역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향남은 지형적으로 화성시 중심에 위치해 있고 산업적으로는 제약업이 발달돼 있다. 그래서 시는 이곳을 바이오․제약 산업이 집약된 의료메카 도시로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시립노인전문병원과 재활전문병원이 포함된 의료타운 조성계획도 이 때문에 생겨났다.

현재 세계 경제 판도를 흔드는 것이 반도체라면 미래 경제를 책임지는 키워드는 ‘건강’, ‘웰빙’이라는 분석도 의료타운 추진에 한 역할을 했다. 누구의 정책이었는지 또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여건 자체가 그렇다. 전문가들도 향남의 비전은 의료도시에 있다고 했다.

향남주민을 포함한 화성시민은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굳게 믿고 있었다. 경기도와 화성시, 그리고 푸르메 재단이 짓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뜻있는 시민들은 병원건립을 위해 모금활동에도 동참했다. 로봇다리 수영선수 세진이도 병점 유앤아이센터와 서신 전곡항 등을 누비며 모금을 호소했다. 푸르메 재활전문병원의 상징이었던 노란색 해바라기는 전국 곳곳에서 희망을 노래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이 1만여㎡의 땅을 마련하지 못해 끝내 무산된 것이다. 동시에 어렵사리 국비를 따낸 노인전문병원도 물건너 갔다.

혹여나 누구에게 빼앗길 새라 조바심 내며 부지를 제공하고 각각 푸르메센터와 푸르메 재활전문병원을 유치키로 한 서울 종로․마포구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결국 시는 향남의 미래를 포기한 셈이 됐다. 향남의 10년 후 50년 후를 논할 중차대한 사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얼마 전 황해경제자유구역 개발 무산으로 앞날이 어두운 상황에 처한 향남을 말이다.

화성시는 재단이 MOU 기간을 3년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지 않고 돌연 입장을 바꿨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핑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은 돈 관리를 못한 시가 제공한 것이다.

시는 향후 여건이 나아지면 좋은 부지를 물색해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내놓긴 했지만 이 같은 기회가 다시 찾아오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푸르메 재단은 시의 우유부단함과 책임회피성 행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상황이다.

시는 지난해 예산을 세울 당시 재정난을 전면에 내세우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예산점감에 나서겠다고 했다. 과연 올바른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것인지 되묻고 싶다.

별다른 묘수도 없이 향남의 미래, 아니 나아가 화성시의 미래를 책임질 사업을 포기하고 언제 어떻게 다시 도전하겠다는 것인지를…. 게다가 복지가 대세인 요즘,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사업을 버리면서 과연 어떤 사업을 잡겠다는 것이지 궁금하다.